아마 캐나다의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UBC)에서 학위를 받은 지반공학 전공자는 필자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UBC의 지반공학 프로그램 소개를 비롯하여 박사과정 중에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2000년 9월 동경공업대학에서 석사를 마칠 즈음 캐나다의 UBC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 이때만 해도 UBC에 어떤 교수님이 있는 지 잘 모르는 채 막연히 캐나다에서 좋은 대학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UBC는 2000년 9월 1일에 학기를 시작했지만 동경공업대학의 마지막 학기는 9월말까지였으므로 필자는 2주일 가량 늦게 캐나다에 입국하게 되었다. 막상 UBC에 와서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2주일 동안 정말 진도가 많이 나가 있었다. 더욱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2000년 겨울학기 Term 1(9월-12월)을 보낸다고 무척 혼이 났다. UBC 지반공학에는 원래 콘관입시험을 비롯한 현장실험을 연구하시는 Campanella 교수(1997년 은퇴), 동적 수치해석과 원심모형실험 등을 연구하시는 Finn 교수(1998년 은퇴), 수치해석 및 흙의 동역학을 연구하시는 Byrne 교수(2001년 은퇴), 실내실험을 연구하시는 Vaid 교수(2002년 은퇴)님이 계셨다(그림 1). Vaid 교수님은 필자가 입학할 당시 토목과 대학원 입학심사를 담당하셨는데 액상화 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시면서 나름대로 일본과 교류를 하고 계셔서인지 필자에게 입학허가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필자가 도착한 2000년에는 이미 두 분의 교수님께서 은퇴를 하시고 후임 교수님께서 와 계셨다.
Group of Four
매주 지반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교수를 비롯한 밴쿠버 지역의 지반공학자들이 참여하는 세미나에서 노령이지만 자주 참여하시고 진지하게 질문을 하시는 Campanella 교수님으로부터 학문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Finn 교수님은 국제적으로 유명하신 분이지만 필자가 유학할 당시에는 주로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계셔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Finn 교수보다 Byrne 교수의 실력이 월등하다고 UBC 선배 졸업생이나 밴쿠버 지역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도 어떤 문제에 대하여 Finn 교수는 아주 포괄적으로 이야기하지만, Byrne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2005년 가을 졸업을 하고 밴쿠버에 있는 Engineering 회사에서 근무할 때 가끔 지도교수가 자문위원으로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였는데 시간당 인건비가 캐나다에서 제일 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물론 변호사보다는 약하지만 말이다. Vaid 교수님은 인도출신으로 실내실험을 아주 꼼꼼하게 철저히 가르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제자들에게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던 것으로 기억되며, 은퇴하실 때는 본인이 사용한 거의 모든 책이나 논문을 사무실 앞에 두고 관심있는 사람은 가져가라고 해서 필자가 여러 권을 가져온 적이 있다. 세미나 시간에 Vaid 교수의 실험결과에 대하여 Byrne 교수와 실랑이 벌이는 광경을 필자는 몇 번 목격했는데 젊었을 때는 두 분이 자주 실내실험결과와 수치해석결과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는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시는데도 매일 오시는 Byrne 교수에 비하여 Vaid 교수는 매주 수요일에만 학교에 오셔서 주로 전공 이외의 책을 읽거나 외부 자문을 하시곤 하셨기 때문에 두 분의 사이는 좋았던 것 같다. 2002년 Vaid 교수가 은퇴함으로 한때 “Group of Four”- Byrne, Campanella, Finn, and Vaid 라고 일컬어 지며, 지난 35년 동안 UBC에서 지진으로 인한 액상화 문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접근방법으로 뛰어난 연구성과를 이루어내던 시대는 끝이 나게 된다.
좀 특별했던 UBC 대학원 생활
UBC 토목과는 북미 이외 지역에서 취득한 석사학위는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는 표 1에 있는 필수 교과목의 성적이 A일 경우 논문없이 박사로 transfer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지도교수 없이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였다. 2001년 4월 Term 2(1월-4월)가 끝날 즈음 어느 수업시간에 Byrne 교수가 본인이 어떤 프로젝트가 있는데 참여하고 싶은 학생은 자기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했던 필자는 Byrne 교수가 뭘 연구하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필자가 그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다행히 다른 학생이 오지 않아 필자는 Byrne 교수와 같이 3~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다. 필자는 석사과정생이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빨리 지도교수를 정하고 박사과정으로 transfer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Byrne 교수는 필자의 performance를 본 다음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그 해 연말까지 연구를 계속 하였다. 액상화와 관련해서 미육군공병단과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 (RPI)에서 실시한 원심모형실험 결과를 유효응력모델을 이용하여 해석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결과가 성공적으로 끝나 필자는 2002년 1월에 드디어 박사과정으로 transfer하게 되었다. 2001년 5월부터 Research Assistantship(RA)을 받게 되었지만 초기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필자는 잠깐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도 했으나, 곧 지도교수를 바라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은 등록금이 없다고 하여 500불을 받아 내기도 하고, 때론 컴퓨터를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한번은 생활비가 별로 없어 3000불을 가불하기도 했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서 무서운 지도교수인데 가불까지 했던지 절로 웃음이 난다.
Byrne 교수의 열정과 급한 성격
지도교수인 Byrne 교수는 필자가 필수 전공과목을 마친 2001년 6월에 34년 동안 근무한 UBC를 은퇴하셨기 때문에 늘 학교 사무실에 계셨다. Byrne 교수는 은퇴한 2001년에 캐나다 공학원(Engineering Institute of Canada)의 Fellow가 되었으며, 연구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부인과 함께 sailing을 상당히 즐겼다. 매년 5월말부터 8월까지 배를 타고 근해로 나갔으며, 필자와는 이메일로 연구결과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Byrne 교수가 바다에서 되돌아 오는 8월말이면 필자는 이런 저런 보고준비로 항상 바빴으며 아무래도 긴장을 하게 되었다. 본인 이름을 딴 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컨설팅을 많이 하고 계셨는데 발표자료 준비 같은 일을 가끔 도와주면 시간을 계산해서 인건비를 주셨는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Byrne 교수는 주로 Soil Dynamics 과목과 Numerical methods in Soil Mechanics이라는 과목을 담당하셨다. 매주 숙제를 내주었는데 한 학기에 9번 정도의 숙제를 주었는데 매번 본인이 직접 채점을 해서 돌려 주셨다. 옛날 분이라 특히 기초적인 지식을 많이 강조하셨으며 특히 실용적인 학문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필자도 그런 부분을 자연히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지진이 올지 모르지만 곧 온다고 때론 협박 비슷하게 하면서 연구비를 받아 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배우기도 했다. 연구에는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계셨는데 여러 장이나 되는 식의 유도를 직접 하거나 때론 밤늦게까지 남아서 연구실에서 뭔가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열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분은 원래 아일랜드출신이기 때문에 약간 성질이 급한 면이 있어서 필자가 공부하는 동안에 다소 힘들었던 일이 가끔 있었다. 필자가 하는 첫말만을 듣고 결론을 내어 버린다든지, 잘라버린다(fire)든지, 감옥에 간다(jail)라는 말을 가끔 했다. 나중에는 거의 듣지 않게 되었지만 처음 몇 년은 가끔 듣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학위를 받고 나서 필자는 당신이 그렇게 심하게 하였기 때문에 혹은 좀 모질게 했기 때문에 필자는 더 많이 배웠다라고 감사하게 되었다.
아쉬움과 그리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지도교수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으니 좀 아쉽지만 다음에 방문을 하면 꼭 지도교수와 사진을 같이 찍어야겠다. 박사과정 중에 지도교수가 다리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사람의 오고 가는 정은 어디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많은 가르침을 준 Byrne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박사학위를 가진 엔지니어는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신 말씀과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셨던 지도교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20년, 30년을 지반공학에 매진하고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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